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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빗속에서...

by @Zena__aneZ 2025. 2. 26.

발걸음이 무겁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을 겨를도 없었다. 이디스는 가만히 숨을 내쉰다. 불현듯, 숨이 차갑다는 감각이 든다. 품 안에 안아 들고 있던 자의 숨이 약하다. 이디스는 제 어깨의 깊은 상처를 지혈하는 대신 아이의 등을 토닥이다가 가지고 있던 포션병을 열어 아이의 상처 위에 붓는다. 상처가 작게 끓는 듯한 형상을 띠더니 곧 아물었다. 아이가 몸을 떨다가 곧 숨을 내쉰다. 죽지 않았다. 늦지 않았다. 아직 살아있다... 차가운 한숨이 흘러나온다. 이디스가 끌어안고 있던 사람은 제 동생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었다. 이제는 이곳에 없는 동생과 비슷한 나잇대의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평생 가질 습관이겠지. 고통을 억누르고 있는 이의 등을 떨리는 손길로 토닥인다.

"왜... 왜, 도와준 거예요...?"

"글쎄요. 내 동생 생각나서?"

이유가 단지 그것뿐만인 것은 아니었다. 동생 생각이 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다른 이유는... 이 아이가 그 사람의 자식 되는 이라서. 이디스는 가만히 손을 뻗어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마치 동생에게 해주던 것처럼. 하염없이 등을 토닥이다가 아이를 안아 들고 몸을 일으켰다. 상처에서 뻐근한 감각이 올라온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얼마나 잔인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렇게까지 크게 이탈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정말 위험할지도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안아 들고 있는 이에게 눈길을 보낸다. 숨이 약하다. 상처는 많이 나았지만 흘린 피가 보충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 오래 살지도 못할 것이다. 이디스는 자신의 어깨가 끈적거리는 것을 느낀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옷을 적신다. 비가 내린다. 몸이 차가워진다. 아직 숨소리가 들린다. 팔에 힘이 들어간다. 눈앞이 어지럽다. 꼭 동생을 영영 잃어버렸던 그날처럼. 흐릿한 두 사람의 눈길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한다. 이디스는 끈질기게 이성을 붙잡다가 느릿한 목소리를 내뱉는다. 죽지 마. 죽지 말아, 제발. 그것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인 줄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품에 있는 아이의 숨을 확인한다. 숨소리가 너무 옅다. 발걸음이 급해진다. 문득 발목이 욱신거리는 기분이었다. 다쳤나? 어디에선가 삐었던가? 잘 모르겠다.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랬다. 이디스는 아이를 끌어안은 채로 발걸음을 빠르게 한다. 몸이 무겁다. 뛰는 것에 가까운 형태로 걸음을 옮긴다. 눈앞의 풍경이 어지럽게 흩어지다가, 곧 초점이 잡힌다. 익숙한 자의 모습이 보인다. 발걸음이 서서히 느려진다.
약속이라도 한 것만 같은 침묵이 흐른다. 이디스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놓칠까 두려워 꼭 끌어안고 있던 아이를 아만다에게 안겨 주었다. 아만다의 손에는 제 것도, 제 아이의 것도 아닌 자의 피가 묻는다. 곧 끊길 것만 같은 숨이 미약하게 붙어있다. 이디스는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다가 곧 도망치듯 뛰어간다. 심장이 거세게 뛴다. 이 심장의 뜀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만다는 허공에 손을 뻗다가, 곧 제 아이를 소중하게 끌어안는다. 아직 살아있다. 금방이라도 끊길 것만 같은 숨이 불안정하다. 빗방울 떨어지는 차가운 소리에 미적지근한 호흡이 뒤섞인다. 아직... 아직 살아있다. 영영 놓친 줄 알았던 야트막한 생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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