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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의 미래에. 그는 언제나 화가 난 채였다. 갈길 잃은 분노는 삶을 무자비하게 찢어발긴다. 모든 시간을 분노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분노로 살아가지 않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죄스러워질 정도로 폐부가 쓰렸고, 이따금 입에서는 붉은 핏덩이가 쏟아진다. 후각이 마비될 것만 같은 기생꽃의 향기에 토할 것만 같았다. 죄스럽다. 원망스럽다. 원하지도 않은 병을 얻고 옳다구나 하고 버린 가족이라는 작자들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결국은 온기를 바라고 마는 사실이었다. 멍청한 것아. 미련한 것아. 바보 같은 것아. 이제 온기를 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왜 기어이 바라고 말아서. 역하다.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죽은 지 한참 된 시체보다도 찬 공기가 .. 2024. 10. 17.
생존.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하필 머리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적갈색의 긴 머리칼이 마구잡이로 흔들린다. 귀찮네. 혀를 한 번 차곤 손에 들고 있던 큰 톱을 어깨에 걸쳤다. 불만 녹아든 표정이 매서웠다. "마수 처리가 덜 됐으면 회수자가 아니라 용병을 불렀어야지." "서부 마물에 대해선 엔간한 용병보다 더 잘 아시잖아요. 워낙 급하기도 했고. 좀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넉살 좋게 말을 늘어놓는 용병을 가만히 노려보다 한숨을 쉬곤 대충 걸치고 있던 톱을 고쳐 잡는다. 마리당 추가금 붙는다. 당연히 드려야죠! 성격 좋긴. 그리 중얼거리며 한숨을 쉬곤 톱을 휘둘렀다. 특별한 기교가 있는 것도 뭣도 아니었으나 모든 행동은 강렬하고 빨랐으며 정확했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정확히 약점을 파고 들어가는 모.. 2024. 10. 16.
아무렇게나 골라낸. 기준도 없이 아무렇게나 솎아내 버린 것. 버려진 것들의 무덤. 쓸모없는 자들의 지옥. 볼란트는 이 땅을 무가치의 정원이라고 여겼다. 그럼에도 태어난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불로를 타고난 자는 불사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 푸르고 하얗기만 한 땅에서는 풀조차 흔하지 않았다. 그것은 백야와 흑야가 오가는 광야였고, 혹독하게도 시린 곳이었다. 이 땅은 사랑할 가치가 있는가? 버리고 떠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모든 버려진 것들이 모이는 땅에서 태어나 그곳을 버리고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애초에 그 기원이 비난이고 고난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그렇다면 탄생 자체가 슬픔이로구나. 버려진 자, 쓸모없는 자의 무덤이 되어버린 이 허연 땅을, 다시 일으켜 세우면... 이 슬픔을 다 채울 .. 2024. 10. 14.
懇願. 왜 생에는 불행이 가득할까. 그것은 지우지 못할 절망과 알 수 없는 질문이 되어 내내 심장 한편을 파고들었다. 가장 큰 행운과 가장 큰 불행은 언제나 겹쳐져 있어, 한쪽에 손을 뻗으면 다른 한쪽도 따라오는 것이 당연지사. 어째서? 의문이 길을 잃고 사라진다. 어린 날의 포르투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무심코 손을 뻗고, 잡고, 슬프게도... 무릎에 까진 상처가 생겼다. 넘어지며 생긴 상처겠거니 했다. 손으로 상처를 벅벅 문지른다. 괜스런 설움에, 혹은 아파서. 입술을 꾹 깨문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뻗는다. 괜찮아? 꾹 눌러쓴 후드 사이로 보인 별빛 같은 머리카락이, 지나치게도 눈길을 사로잡아서... 말을 건넨 이는 포르투나의 손을 잡고 미약한 치유마법과 보호마법을 함께 걸어준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 2024.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