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전체 글373

7일 편지- 리츠 (1) 2024. 11. 15.
영혼이란 종잇장과 같아. 주의: 텍스트 고어, 유혈, 살인 영혼, 영혼을 다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토할 것만 같다. 머리가 찢어져 그 사이로 피가 쏟아져내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렁거린다. 속이 불편하다. 위장이 뒤틀린다. 그토록 지우려고 노력한 빛나는 과거의 한때와 피와 폭력, 강제로 굴복시킨 것, 오롯이 더러운 것으로 기워진 기억들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인다. 피부 위로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피부 아래에 궤양이 들끓는 착각과 함께 소용돌이친다. 더럽고 역겹다. 새파란 눈 안에 사랑하던 기억과 끔찍한 폭력의 기억이 뒤섞인다.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세레니아스라고 불리던 자는, □□□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방, 황금 장식이 붙은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차가운 .. 2024. 11. 14.
돌아갈 곳. 그러니까, 집이라는 것은... 편한 곳.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괴롭지 않고, 거리낌도 없는... 그렇다면 나에게 집이라는 곳이 존재하나? 아니, 애초에 있긴 했었나? 자조적이고 자기 학대적인 질문이다. 은설화는 흔한 슬픔조차 없는, 아무것도 담지 못할 정도로 맑고 투명한 초목색의 눈으로 눈앞의 풍경을 바라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쓸모없는 물건들을 본다. 반쯤 불타고 남은 책. 제법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것처럼 보여서 그랬나? 어차피 은설화는 자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을 절대 가문 안에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다. 애초에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거의 없었고... "소월아." "네, 아가씨." 오래전부터 함께한 호위무사는 설화의 곁에 선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소월은 설화만을 지켰.. 2024. 11. 10.
침묵하는 불안. 그는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물의 소굴이라고 들었으나 그저 마물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으로 보이는 자도 있었는데, 대체 사전 조사를 얼마나 허술하게 한 거지? 게다가 마물들은 계속 독까지 뿌려댔다. 포르투나. 이 독, 계속 정화할 수 있어요? 치유 마법을 몸에 건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누적되는 피로도를 무시할 수 없었다.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고개를 주억이곤 검의 손잡이를 꾹 쥔다. 검의 손잡이 위로 순백색의 빛무리가 일렁이며 칼날을 만든다. 손 안에서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늘 잡아온 무기에서는 들뜨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지도 않은 평이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검을 유연하게 휘두른다. 가볍게, 마치 산책하는 듯한 걸음이었다. 위로 치고 올리고,.. 2024. 11. 9.
새로운 칵테일 바에서. 밤에 불어오는 바람이 쌀쌀하다. 서늘하게 식은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느릿하게 두어 번 문지르다가 벤치에서 일어났다. 하던 작업이 잘 진행되지 않아 나와서 하염없이 앉아있었더니 어느덧 밤이었다. 밤하늘에 느릿하게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눈을 깜빡인다. 술이 먹고 싶다. 그러니까... 칵테일. 칵테일이 먹고 싶었다. 느릿하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다가 몸을 일으킨다. 이 근처에 바가 있으려나.마가렛은 술을 즐기는 편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칵테일을 좋아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한 잔에서 두 잔, 좋은 일이 있거나 기쁜 것을 나눌 때는 네 잔에서 다섯 잔까지. 절대 과음하지 않을 정도로. 가끔 너무 가라앉을 때면 술을 퍼마시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었으나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2024. 11. 7.
태양 조각으로 빚어진. 처음에 그곳은 공허였다. 암흑과 빛만이 있었다. 처음이라고 할만한 지점에는 그런 것들밖에 없었다. 그저 무수한 반짝임만이 있을 뿐.인식 없는 존재함이 어떤 의미가 있냐 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의미도 없는 곳에서 수많은 반짝임들이 모이고 모여 다른 것을 빚어냈다. 그것이 생길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고, 특별한 형태를 갖추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그때에는 없었다. 있었어도 없는 것과 다름이 없는 까닭이었다. 존재의 탄생이라고 함은 오로지 인식에 있다. '이것이 여기에 있노라'는 생각. 모든 것은 그것으로 성립된다.그렇게 수많은 반짝임이 그저 존재하기만 할 때, 누군가가 그것을 처음으로 인식했다. 수많은 생명이, 인간이 그것에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4.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