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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첫 번째 꿈.

by @Zena__aneZ 2024. 2. 23.

꿈은 세상을 바라본다. 모든 무의식을 유영하는 존재를 바라본다. 이윽고 무의식의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꿈 밖으로 안내한다. 이 기묘한 꿈의 세계는 넓고 공허하며, 또한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니지만 실체를 가진다.
우주는 유한하다. 꿈은 무한하다. 유한함 속에서 무한함이 팽창한다. 허상과 같으면서도 진실인 세상. 말 그대로 꿈결 같은 세상이다. 세상의 첫 번째 꿈은 꿈으로 흘러 들어오는 모든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이는 것을 바라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 아득한 혼돈을 마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모든 꿈이 모이는 이 공간을 잠깐이나마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말을 한다. 코마(coma), 깊은 잠. 의식이 가라앉아 무의식이 되고, 무의식이 떠올라 의식이 되는 기묘한 공간.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자는 드림코어, 이 세상의 첫 번째 꿈이라고.

"... 왔어, 들어왔어!"

코마에 대해 조사하는 사람은 많았다.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도 많았고, 꿈을 분석하기 위한 단체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코마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완전한 랜덤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수많은 노력 끝에 코마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렇게 코마에 한 명이 발을 디뎠다. 본인의 의지로. 어지럽게 뒤엉킨 창문들, 철도 위에 자라난 해바라기들, 하늘 위에 놓인 문. 걸을 수 없는 계단, 책장, 물처럼 투명한 것 속에 떠다니는 펜과 지우개들. 기묘한 무의식의 세상. 이곳에 발을 디딘 사람, 히아신스는 유명한 마법사이자 기술자였다. 무의식에 대해 연구하는 천재 마공학 기술자. 히아신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감각이 기묘할 정도로 선명했다. 이 부분부터는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마주하는 세상이 너무나도 신기하여 잔뜩 들뜬 마음을 품고 걷는다.
한참을 걸어도 꿈의 공간은 끊기지 않았다. 체력이라고 할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에서 진짜 꿈이려니 싶기도 했다. 수영장처럼 보이는 구조물 안에는 온갖 꽃과 수풀이 화려하게 피어나 물처럼 넘실거렸다. 혹시라도 빠진다면 못 올라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서있던 땅이 기울어 몸이 그대로 수풀 속에 빠졌다. 수풀 속에 점점 빠져간다. 늪처럼. 생각한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된다니. 이곳은 무의식의 공간이었고, 무의식의 공간 속에서 생각한 것은 그대로 무의식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결론에 도달하자 소름 돋는 공포가 의식을 덮친다. 저를 도와줄 사람을 상상하기도 했으나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다치거나 죽으면 현실에서도 그럴까? 그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수풀에 거의 다 빠져갈 때쯤, 문득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에 의식이 한 곳으로 휩쓸리자 수풀이 사라졌다.

"사람은 사람을 상상해낼 수 없어."

타들어가는 보랏빛 여명을 품은 긴 머리카락, 오묘하고도 기이한 분홍빛 눈을 가진 이가 히아신스의 앞에 섰다. 히아신스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꿈을 사람의 형태로 빚어놓는다면 꼭 저런 사람일 것이라고.

"당신이 드림코어야?"

"그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는 연구자야. 이 세상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어."

그는 히아신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곳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 같은데.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온 연구를 이런 것 때문에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찬찬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 질문에 대답해 봐. 그렇다면 혼돈으로 데려다줄게. 혼돈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한다. 단어의 뜻 그대로인 곳이라고. 모든 의식과 무의식이 섞이고, 모든 상상은 현실이 되고 모든 현실은 상상이 되며, 침묵과 소음이 전염성 질병처럼 퍼지는 곳. 원인과 결과가 무한히 팽창하는 곳이라고. 말로만 들어서는 감이 오지 않았다. 히아신스는 그를 바라본다. 질문해.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리다가...

"이곳이 네 지식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

 

히아신스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지식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오만함,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지식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냐고? 아니, 그건 평생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 놓인 지식만으로도 벅찼으니까. 그럼에서 부득불 새로운 지식을 원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히아신스 본인도 대답하지 못한다. 그 답은 지식적 욕구에 대한 갈망과 함께 평생 따라다닐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은 기쁨 그 자체였고, 히아신스는 순수한 기쁨을 느끼고 싶었다. 확신은 없어. 하지만 나는 그것을 갈망해. 어떤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그리고 그것을 내가 감당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그 지식을 바라고 있어. 히아신스의 진실된 대답을 듣고는 드림코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은 대답이야. 이제 내 손을 잡고, 잠시 눈을 감고 있어. 히아신스는 그의 말대로 그의 손을 잡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는 경악스러운 모습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의 경계선은 빨려 들어가 사라졌고, 사람의 목소리와 모든 소음이 뒤섞였고, 또한 모든 것들은 차갑게 내려앉다가 뜨겁게 끓어오른다. 유한한 현실 속에서 실체 없는 것들이 영원히 팽창한다. 히아신스는 그것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회색 머리칼이 날카로운 흐름을 타고 미끄러진다.

 

"히아신스, 이 세상에 다시 온 것을 환영해."

 

그는 히아신스의 눈을 가린다. 모든 욕구는 거대한 흐름에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이성에 짓눌려 사라진다. 히아신스는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이 아니다. 단지, 처음으로 발을 들였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뿐. 그는 히아신스를 놓는다. 그 몸은 혼돈 속으로 추락하는가 싶더니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히아신스가 코마에 발을 들인 것을 실패했다고 여긴 모든 날들은 사실 성공한 날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그곳에 발을 들이겠지. 드림코어는 이 세상의 첫 번째 꿈이었을 뿐, 사람들이 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니 최대한 안전하게 돌려보낼 뿐이었다. 그것이 최선이니까. 언젠가 서로의 최선에서 드림코어가 아닌 다른 쪽이 더 앞선다면,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었다. 다음에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말도록 해. 그렇게 말한 드림코어는 또다시 팽창하는 무의식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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