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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그럴듯하게 빚어낸.

by @Zena__aneZ 2024. 7. 24.

완벽한...


 

 

물빛 머금은 이는 숨을 내쉰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소리이기도 했고, 혹은 슬픔에 잠긴 소리이기도 했다. 설움 가득한 목소리가 갈라진다. 바닥을 향하던 눈이 기어이 앞을 본다면, 아, 이곳은 지옥이었다. 눈인지 이마인지 가늠도 되지 않는 곳에서 흐르는 검푸른 피의 줄기가 정신을 끈적하게 녹아내리게 했다. 채 정리되지 못한 앞머리가 얼굴을 가리듯이 내려온다. 너무 아팠다. 끔찍하게 고통스러웠으나 그런 고통은 또한 익숙한 것이었기에. 숨 쉬는 것이 영 버겁다. 주저앉아버린 몸에는 영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움직일 힘은 충분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진정으로 할 수 없어지는 것은 어떤 행위인가...

 

이 안에 너만큼 강한 녀석은 없었는데.

 

아, 신의 음성이다. 다정하고도 잔혹하며, 끔찍하고도 애틋한... 그렇기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으나 피할 수도 없는. 신의 손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친 것만 같았다. 물빛 머금은 사람 하나 정도는 짓눌러도 아무렇지도 않을 절대자의 손이 작은 이를 감싼다. 길게 늘어진 머리칼을 소중한 것 어루만지듯 잡으며 금방이라도 잡아 으깰 수 있는 어깨 위에 손가락을 얹는다. 뜨거운 것으로 피부를 내리누르는 통증이 느껴진다. 눈앞에 죽어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원한이 물빛을 짓누른다. 이제는 다 절망하여 흘릴 눈물도 없다는 사실이 애석하기만 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다시금 절망하게 된다. 바닥은 끝도 없이, 계속, 그렇게, 계속... 잔혹한 신은 피조물을 어루만진다.

굳이 하등한 것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있나. 그 목소리를 담던 사람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익숙한 절망감이다. 그리고 이 고통은 결코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저는 아둔하여, 알지 못합니다... 사실은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이 절망감은 어찌하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절망은 비탄으로 지우리라. 피를 피로 씻는 것이다. 악의 고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때, 비로소 신이 가장 아끼는 피조물이 될 것이니.

신은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전부 죽여 취해라. 네가 흘린 피보다도 더 많은 피를 흐르게 해. 복수와 분노로 살아가라. 쉽지? 신의 음성을 담은 자는 이윽고 미쳐버리고 마나니, 진실도 거짓도 없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광기만을 품고... 목이 뻣뻣하다. 잔뜩 입은 부상 때문에 굳어버린 것인지, 혹은 다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신이 아끼는 피조물이 되어 못 박힌 듯 앉아있을 뿐이었지.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오면 몸을 일으킨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누군가의 의지에 기대어 사는 것이 지나치게 익숙했다. 빚어낸 삶에는 알 수 없는 진득한 감정이 흐른다. 빠르고 거세게. 파도처럼 산산히 부서지며. 잔혹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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