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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세상의 전령.

by @Zena__aneZ 2024. 7. 25.

세상은 살아있다. 그것은 감정을 느끼지는 않지만 분명히 심장이 박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세상은, 녹음 짙푸른 이 땅은, 푸른 물로 가득찬 바다는 수호자를 원했다. 그들이 살아가는 것을 원했고, 세상을 알아줄 이를 원했다. 수호자와 함께 탄생한 그것은 수호자보다 무르고 부드러웠으나 자유와 깨끗함을 알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였다.
세상의 의지를 아는 작은 이는 이 세상에 발을 디뎠다. 가장 순수한 색채를 머금고.

타오르는 주황빛 석양의 깃털 안에는 선명한 장밋빛이 일렁거렸고, 깨끗하고 투명한 청록색 보석을 닮은 눈은 빛을 잃는 일이 없었다. 작고 아담한 새의 형태를 한 이것은 이 세상 위에서 살아가는 생명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얼굴에 수놓인 푸른 줄기의 모양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다만 이 작은 새의 기원은 마물에 더 가까웠기에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멀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작은 새는 세상의 뜻과 수호령의 의지에 따라 충실한 전령의 역할을 해냈다. 수호령을 따라 인간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같은 모습을 띠며... 평화의 시대였다. 그 누구도 의미없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었던, 아주 평화로운...

"벨레리샤. 편지를 맡아주지 않겠어?"

작은 새는 그 말뜻을 모르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몇번이고 사라졌다 돌아오는 불사조의 얼굴에 걸친 미소는 너무 지친 표정이었다. 벨레리샤는 첫 번째 불사조가 있을 때부터 존재했고,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함께했다. 그리고 불사조의 편지를 매번 받는 것도 새의 역할이었다. 이 세상을 떠나면 전해줄 편지. 벨레리샤는 그 편지를 받고는 하얀 불사조의 품에 안겼다. 혹독하게 추운 것이 이 강인한 수호자의 온기에 물러나버리고 만다. 머지않아 비가 내렸다. 북부에는 따뜻한 비가 내렸고, 벨레리샤는 편지를 품에 안고 날아간다.
머리에 매달고 있던 보랏빛의 꽃장식이 흔들거리며 청아한 소리를 내었다. 이 머리 장식은 불사조가 쥐여준 것이었다. 친애의 증표이자... 언제까지고 함께 하겠다는 뜻. 이것이라면 다음에도 알아볼 수 있다고. 첫 불사조의 말대로 그 이후에도 그는 항상 벨레리샤를 알아보았다. 벨레리샤는 그것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늘 절망하며 죽었던 이는 모든 것을 잊고 돌아와 다시 절망하며 죽을 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불사조는 세상을 애달프게 사랑했고, 벨레리샤도 마찬가지였다. 벨레리샤는 한순간에 머물던 불사조의 편지를 가지고 돌아간다. 모두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함께 울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오로지 고통이라고. 고통을 알기에 기쁨을 안다고. 수만 가지의 고통과 하나의 기쁨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을 과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 세상의 전령인 작은 존재는, 살아가는 것은 오로지 영원한 추모라고 여기며 살아간다. 이해하지 못할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원히 날아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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