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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캐 로그

안녕, 잊혀가는 사람.

by @Zena__aneZ 2024. 7. 27.

내가 영원토록 떠나보낼 사람아.

당신의 영혼으로 축복해 준 이 육신이 전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살아가겠다.

당신에게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살아가겠노라고.

 


 

 

선명한 청빛 보석을 꼭 닮은 색의 머리카락이 시원한 바람에 흩날린다. 팔 위에 주홍빛의 선이 그려진다. 빠르게 달려 마물 하나를 잡는다. 주홍빛 선이 번뜩이며 마물에게 흘러 들어가고, 그대로 마물의 숨통을 끊어내었다. 은하는 바닥에 축 늘어진 마물을 보곤 주저앉아버렸다. 이것은 분명히 강한 힘이긴 했어도 몸에 심각한 부담이 간다. 자연의 순수한 힘을 몇 차례나 정제한 이후 주입한 것이었지만 사람이 감당할 힘이 아니었다. 힘을 다루는 법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조절하면 괜찮을 테다. 하지만... 이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이후에 시술을 받을 때는 여러 제약을 걸어두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감각이 선연하다.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그저 바닥에 누워있노라면 그의 오랜 사랑이 슬그머니 다가온다.

"은하, 많이 힘들어?"

레니테오. 애정 담긴 목소리가 느릿하게 퍼진다. 길게 늘어진 레몬색의 머리칼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은하는 조심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은하, 또 실험했어? 하지 말라니까. 그런 걱정스러운 말에 은하는 슬그머니 눈을 굴리다가 애매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 하지만 아직 동부가 안정되지도 않았고...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고 나면 조심할게. 레니테오는 미묘하게 찡그린 표정을 펴곤 은하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둘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다. 서로의 완벽한 이해 하면서도 선의의 경쟁자였고, 기꺼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했다.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것에는 특별한 성애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은 그 무엇보다도 끈질긴 것이 있었다. 영혼.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영혼을 사랑한다. 강렬한 푸른빛을 머금은 이는 레몬빛 반짝이는 분홍색 머금은 이를 사랑한다. 그것에는 어떤 이해도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마치 아침에는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남에게 엄격한 것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훨씬 엄격한 이는 사랑하는 이에게만큼은 물러졌다. 은하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게 생각했다. 언젠가, 무언가를 골라야 할 순간이 오면 반드시 후회할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런 기묘한 불안감은 마주 잡은 손의 온기에 저만치 물러나 사라진다. 이 불안감은 그를 평생 따라다닐 것만 같았고, 또한 평생 이렇게 물러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수명에서 오는 시간이었다.

은하는 반복적으로 꾸준히 받아온 실험으로 인해 수명이 이상하리만치 늘어났다. 그 몸은 늙는 것보다 천천히 기능이 정지하고 바스러진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무척이나 오래 사는 것이 저주가 되었다. 은하는 맞잡은 손에 약간 힘을 주었다. 레니테오는 그런 불안감을 쉽게도 알아보곤 손을 놓치지 않았다.

 

"은하, 우리 하나 약속하자."

 

"어떤 것을?"

 

"만약에, 우리 둘 중 누군가가 먼저 죽는다면... 포기하지 않기로."

 

"먼저 떠난 이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래, 그런 거. 어때?"

 

분홍색의 눈이 올곧게도 청빛을 담아낸다. 은하는 또 실없이 웃어 보였고, 그런 웃음을 보던 레니테오는 맑은 표정을 한가득 담아냈다. 그래, 부끄럽지 않도록. 죽음 앞에서 무너질지언정 포기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한 점의 후회도 없도록... 둘은 조용히 약속하고 서로에게 기대었다.

은하는 그 약속을 한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으나, 다만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왔을 때에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능력함을 그토록 경계하고 오만하게 굴지 않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찰나의 방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온다. 신체 대부분에 강렬한 주홍빛 선이 퍼진다. 떼로 몰려드는 마물을 쉼 없이 처리하곤, 죽어가는 사람의 몸을 안아 들었다.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 다른 곳에서 계속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비명소리이기도 했고, 울음소리이기도 했다. 레니테오, 레니. 미안해. 내 무능력함이 너를... 결코 울지 않는 이는 하염없이 무너진다. 눈물이 자꾸만 새어 나온다. 몸이 크게 망가진 이후로 눈물조차 잘 나오지 않았건만, 그동안 지독하게도 쌓여온 모든 눈물이 설움에 녹아내린다.

 

"... 은하, 나는 네 눈물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나를 울게 만드는 건 여전히 너밖에 없으니까..."

 

제 몸보다 훨씬 작은 몸을 품에 안는다. 숨이 약해진다. 생명의 끝이 가까워진다. 레니테오는 은하에게 손을 뻗었다. 황금빛이 일렁거린다. 그에게 오래도록 이어질 축복을 내린다. 혹자는 그것을 영혼의 축복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한 약속, 기억하지. 꼭 지켜야 해. 네 영혼인 나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서로의 영혼이었던 이들은 강렬한 축복으로 함께했다. 죽고 나서도 이어질 황금빛 선은 서로를 놓치지 않도록 만들 테다. 죽어서는 네게 가게 될 테니, 살아있는 동안에는 꿋꿋하게 살아내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영원토록 떠나보낼 사람아. 당신의 영혼으로 축복해 준 이 육신이 전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살아가겠다. 당신에게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도록 살아가겠노라고... 다시 만날 그날을 고대하며.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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