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초목에서 비롯된 생명은 호기심도, 겁도 많았다.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그의 본질이었으나 그것을 하지 못했다. 주어진 시간이 길었던 이는 누군가가 자꾸만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죽음이란 본디 익숙한 개념이었으나 생명이라는 야트막한 것은 그것을 두려워한다. 하물며 주어진 시간이 이토록 차이 나는 것이... 멜리아레켄스, 메르라고 불리던 이는 오로지 홀로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이름을 부를 사람이 없었다. 모두 그를 남기고 떠나 버렸다. 죽음이란 모든 생명에게 찾아오는 일이었는데, 필연이었는데, 멜리아레켄스는 타인의 죽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혼자였다. 하지만 혼자는 너무 외로웠다. 이따금 절박함을 느끼기도 했다. 죽지 마, 죽지 말라고. 여린 물빛 머금은 이는 죽음의 정적에 몸서리치며 도망치듯 숨어버린다.
숨어버린 곳에서 다른 존재를 본다. 검고 붉은빛. 그 사이에서 샛노란 눈이 등불처럼 반짝인다. 어둡고 깊은 혼을 주위에 두고 있는 모습은 사신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물빛 초목을 닮은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그런 모습에 이끌렸다. 그 존재는 쉬이 죽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니까. 죽음이란 알 수 없는 것이고, 미지는 두려움을 부른다. 멜리아레켄스는 걸음을 옮긴다. 조심스러움을 한가득 머금고 그를 바라보며 말을 건다. 저기, 곁에 있어도 괜찮을까요?
오니. 흔히 괴물이라고 불리는, 분명히 괴물이 아닌 자는 고요한 숲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누군가를, 혹은 대부분의 존재들을 위한 배려였다. 어떠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숲을 구태여 찾는 사람들도 줄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모습을 숨기는 자는 고요함 속에서 안온을 느낀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다. 분명히 외로움을 느끼는 생명이었으나 그것보다도 평온이 더 중요했다. 다른 이와 구태여 부딪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었을 터였다.
혼자인 것이 익숙한 자는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것은 낯선 감각을 불러온다. 경계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제게 다가온 이는 분명히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고, 겁도 많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가온다. 혼자인 것을 못 견뎌하는 것처럼. 가끔은 너무나도 여려 보여 다치게 할 것만 같은 감각도 있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이 고요한 숲에서 친구 하나쯤은 괜찮았으니까. 초목의 정령은 늘 놀러 왔고, 오니는 그런 정령을 조심히 맞이해 주었다. 최대한 겁먹지 않도록. 정령은 언제나 초목과 닮은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며 상대를 대했고, 오니는 정령에게 늘 꽃을 하나씩 쥐여 주었다. 화관을 만들어 그의 머리에 씌워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고요한 숲에서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간다. 평화는 고요함을 타고 흐른다.
"저기, 내일 또 찾아와도 괜찮을까요...?"
"오고 싶다면 와도 돼."
고마워요! 그리 말하곤 오니의 품에 꼭 안긴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꽤 놀랐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라고 안 놀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심히 마주 안아주곤 금방 팔을 푼다. 정령은 화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정적이 물결처럼 퍼진다. 어쩌면 조금 외로울지도 모른다.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더 크다더니, 그 말이 꼭 맞다. 오니도, 정령도 고요하게 내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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