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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영혼이란 종잇장과 같아.

by @Zena__aneZ 2024. 11. 14.

주의: 텍스트 고어, 유혈, 살인




영혼, 영혼을 다해서.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토할 것만 같다. 머리가 찢어져 그 사이로 피가 쏟아져내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렁거린다. 속이 불편하다. 위장이 뒤틀린다. 그토록 지우려고 노력한 빛나는 과거의 한때와 피와 폭력, 강제로 굴복시킨 것, 오롯이 더러운 것으로 기워진 기억들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인다. 피부 위로 무언가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피부 아래에 궤양이 들끓는 착각과 함께 소용돌이친다. 더럽고 역겹다. 새파란 눈 안에 사랑하던 기억과 끔찍한 폭력의 기억이 뒤섞인다.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세레니아스라고 불리던 자는, □□□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고급스럽게 꾸며진 방, 황금 장식이 붙은 창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미끄러지듯 들어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간다. 무언가에 홀린 듯 창가로 걸어간다. 작은 테이블 위에 반짝이는 은빛 물건이 놓여 있었다. 제법 날카로운 페이퍼 나이프. 아. 이거면 충분하다. 바람이 더 거세게 분다. □□□의 머리카락이 마치 폭풍 속에 서있는 미친 사람처럼 마구잡이로 흐트러진다. 하하. 하하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는다. 저택의 사용인 중 하나가 방에 들어와 흠칫 놀란다. 지금 □□□의 모습은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과 같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로 푸르다고, 자유롭다고,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는 순식간에 사용인의 목에 페이퍼 나이프를 꽂아 그대로 찢어발긴다. 피가 분수대의 물을 튼 것처럼 쏟아진다. 하얀 잠옷이 온통 붉게 물든다. 눈에 피가 튄 것도 같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피웅덩이에서 찰박, 찰박... 희게 드러난 발이 온통 붉어졌을 때, 핏자국을 길게 남기며 걷는다. 집안의 사용인을 닥치는 대로 죽인다. 하얀 옷에서 붉은 핏물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붉은 옷을 주었어야 할까요? 세레스. 새카만 머리카락 사이로 파란 눈이 유리구슬처럼 반들거린다.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지만 순식간에 그의 몸이 기운다. □□□가 그의 위에 올라탔다. 당장이라도 찌를 것처럼 나이프를 들고.

"왜, 이름으로 불러줄까? 아니면 다른 호칭으로?"

□□□는 마치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사람처럼 웃었다. 유리구슬처럼 반들거리는 눈만 아니었다면 그저 곱게 웃고만 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는 다시 한번 이름을 불렀다. 몸이 옅게 떨렸다. 새겨진 공포와 흔적은 지워지지 않겠으나 □□□가 지난날 해오던 일은 언제나 새겨진 공포에 대항하며 불합리를 찢어발기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굴복했나. 이 저택의 사용인들이 모든 불합리에 침묵하며 동조한 것처럼. 혹은 더 많은 사람들이... □□□는 이를 악물었다. 가냘픈 종잇조각이 불타 사라지듯, 그렇게 웃음이 없어진다. 사랑한다는 말은 설탕처럼 달콤했다. 다 타버린 설탕을 입에 물면 위장까지 아릿해지는 것처럼. 속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삼킨다면 이윽고 죽어버리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가장 처음 약속을 나눈 사람은 어디로 가고. 온기를 나누던 사람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타버릴 것만 같은 열기만이 남아서. 페이퍼 나이프가 그의 살갗을 파고 깊게 찔러들어갔다. 사람을 찌르는 것과는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는 차라리 잊고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페이퍼 나이프를 손에 쥔 채였다. 나만큼은 외면해선 안 돼. 더 이상은 잊으면 안 돼. 나에게 사랑을 속삭인 눈앞의 이 자의 말에, 사실은 안심한 주제에. 그 사람의 죽음에 너무나도 괴로워, 사실은 망각을 달갑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미 찢어발겨진 영혼이 불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영혼이란 마치 종잇장과도 같아서, 쉽게 타올라 사라진다.
시체처럼 차가운 손이 뺨에 닿는다. 소름 끼친다. 눈에서 피와 눈물이 섞여 흐른다. 이게 무슨 비정상적인 슬픔인가. 유일하게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잊은 것에서 기인한 슬픔인지. 혹은 이 피냄새가 너무 역해서 눈을 비집고 나오는 것인지. 혹은 제게 사랑을 속삭인 자를 찌르는 것에서 유일한 사랑의 죽음을 겹쳐보고 말았던 건가? 속이 너무나도 울렁거렸다. 진즉에 찢어발기고 불타 사라진 영혼이 희미하게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지. 이것은 회개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새카만 머리카락이 마치 폭풍에 휘날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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