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는 급한 발걸음을 옮기며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자식처럼 여기는 이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인질 때문에 그저 가만히 있었다니. 네 번의 총상에도 죽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알고 있는 것과 용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과거의 흉터와 지금의 상처 중 무엇이 더 아프냐 물어도 대답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아팠으니까.
펜비는 총알을 마법으로 건져내어 겨우 지혈하고 있었다. 파란 그물 같은 막이 상처의 표면을 덮는다. 너무 늦은 걸음이 아닌가, 하는 익숙한 절망이 사그라들었다. 절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또다시 익숙한 감정이 치고 들어온다. 분노, 모든 것을 씻어내는 강렬한 파도와 같은 감정 말이다. 아만다는 정부 소속의 사람을 바라본다. 무기를 꺼내 들고 싶었던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장의 복수보다 자식과 다름없는 이가 훨씬 중요했다. 얼굴은 기억했으니 되었다. 다음에 또 마주한다면... 매서운 눈길을 거두곤 몸을 숙여 펜비를 안아 든다. 피를 계속 흘리고 있던 탓인지, 몸이 가벼웠다.
펜비는 몸이 들리는 감각에 짧은소리를 낸다. 상처가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매 순간 엄습해서. 피 삼키지 말고 뱉어. 위험하다.
펜비는 피가 나면 삼키려 하는 습관이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더 걱정 끼치는 것이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달래는 듯한 말을 건네면, 계속 삼키던 피를 토해낸다. 몇 번이고 피를 게워내고는 죄송하다는 말을 건넨다. 괜찮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소중한 아이가 다치는 것은 여전히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감각이었으니. 목의 총상에 한 번 눈길을 준다. 정말 죽일 생각이 아니었다면, 더 끔찍한 고통을 주고 싶어서겠지. 머지않아 도착한 용병길드의 안쪽 치료실에 들어간다. 미리 연락을 받은 다른 치유사가 대기하고 있다가 빠르게 치료를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출혈이 멈춘다. 여기서 더 치료를 하기보다는 자연회복에 기대는 것이 낫다는 말을 듣는다. 누군가의 보호자인 것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은 여전히 과거의 상흔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날로부터 펜비는 며칠동안 거의 내내 기절해 있었다. 워낙 피로도가 많이 쌓여있는 상태에서 부상을 입은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가끔 정신을 차릴 때도 있었지만 목이 욱신거려 말을 거의 할 수도 없었다. 아만다는 치료실에 자주 들려서 펜비를 보았다. 얼굴 위로 드리운 빛에 커튼이라도 칠까, 하던 찰나에 작게 앓는 소리가 들린다. 나쁜 꿈을 꾸는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어 잠시 안색을 살핀다. 표정이 잠시 찌푸려졌다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빠... 그 작은 목소리에 일순간 몸이 굳었다. 낯선 말이라서. 꿈속에서 어느 쯤에서 헤매는지 알겠던 탓에. 애틋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칼을 쓰다듬어준다. 옛적에 제 아이에게 하던 것처럼. 여기에 있어, 아가. 아만다의 말에 펜비의 표정이 점차 평온해진다. 옅은 숨소리만 울린다. 머리칼을 정리해 주듯 두어 번 쓰다듬다가 손을 내리곤 커튼을 친다. 잘 자렴. 나쁜 꿈은 꾸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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