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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원치 않았던 재회.

by @Zena__aneZ 2025. 2. 17.

눈이 하염없이 쏟아진다. 꼭 과거의 어떤 날처럼. Q는 먼 과거의 병증을 느낀다. 그것은 상처였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여겼던 친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눈이 있었다면 그리움이 담겼을지도 모르리라 생각했다.
Q가 기억하고 있던 릴리 윈터는 언제나 웃을 줄 알고 당당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릴리 윈터는, 마치 얼음장처럼 서늘하고... 알 수 없는 상처를 끌어안은 것만 같았다. 아무리 과거를 되짚어봐도 제 오랜 친우의 그런 공허한 표정을 찾을 수 없었다. 떠올릴 수 없는 상처 입은 표정이 그동안의 균열을 알리는 것만 같아서. 마치 잘못하고 있는 것을 인정받는 기분이라서. 그래서 더욱 인정할 수 없어서.

"릴리, 그때 왜 희생한 거야? 난 여전히 너를 이해할 수 없어."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그뿐이었어."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어? 정말 그게 최선이었던 거야? 너는 여전히 알 수 있는 것만을 물어보는구나. Q는 주먹을 말아 쥔다. 폐부가 얼음장처럼 서늘해진다. 그때, 왜 그를 보냈느냐고. 왜 고향을 두고 떠났느냐고. 릴리 윈터는 시니컬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 자신이 생각해도, 그런 웃음은 거의 지어본 적이 없었다. 그조차도 얼음장 같은 미소가 낯설었다. 왜, 내가 고른 방법이 상처가 됐어? 그렇다면 다행이네. 상처가 되길 바랐거든.

"난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어. 네가 왜 그랬는지, 그리고─"

"이유를 듣고 싶다면, 나를 이겨 봐. 그렇다면 얘기해 줄게."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쉽게 이해되는 것은 바로 릴리의 행동이었다. 전투 자세와 눈빛, 그리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방어술. 옛적부터 무기를 부딪힐 때 한 번도 쉬이 흘러간 적이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신이 내린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릴리는 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자기 자신도 믿는 편이 아니었다. 기적이나 운명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의 가까이에 있는 이들 중 그가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릴리 윈터라는 사람은 그 이름 그대로, 겨울을 냉정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검의 궤적은 여전히 우아했다. 변칙적으로 생겨나는 반투명한 벽과 행동 패턴을 파악해 움직인다면 무서우리만치 날카롭게 벼려진 녹색 눈과 마주한다. Q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이길 수 없겠다. 완벽한 패배였다. Q의 대검은 보기 좋게 눈밭 위를 나뒹굴고, 릴리의 대검은 Q의 옆에 꽂힌다. 릴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설움인 것 같기도 했고 분함인 것 같기도 한 표정이 너무나도 서글펐다. 서글픔을 마주한 그는 드디어 인정했다. 그것이 두려워 참 많은 길을 돌아왔다.
...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어.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어. 내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거.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다는 말이 릴리에게 있어 얼마나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 않았다. 릴리는 언제나 올곧게 앞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고, 자기 자신조차 수단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Q는 그렇지 못했다. 어쩌면 북부에서 진정으로 불가능한 이상을 하염없이 바라던 것은 Q였을지도 몰랐다. 네가 그래서는 안 됐어. 온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해도 상관없지만, 너만큼은 그래선 안 됐어.

"이 상황에서 제일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 네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야. 네가, 한때 내 친구였던 네가 살아서..."

그 사실에 빌어먹을 안도감이 들었다고. 눈물이 눈을 비집고 나온다. Q는 문득, 자신에게 더 이상 눈물을 흘릴 기관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 서러웠다. 차라리 같이 울면 조금이라도 나을까, 이 너덜거리는 심장이 덜 아플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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