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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애정도, 죽은 것도 무겁다.

by @Zena__aneZ 2025. 2. 24.

새벽의 검디검은 눈꺼풀 사이로 서걱거리는 이슬이 떨어진다. 겨울이 매섭다. 밀려오는 아침이 두렵다고, 차마 고백하지 못한 진의만이 빙빙 맴돌았다. 이디스는 작은 흔적을 좇는다. 흉터투성이의 손은 긴장감이 뒤섞여 축축해졌다. 어딘가 다치기도 한 것 같다. 익숙하지도 않은 무기를 매서운 본능으로만 다루며 마물을 가른다. 마물이 너무 많았다. 이디스는 체튼을 생각했다. 마법은 꽤 잘 쓰던 동생이지만 다수의 마물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약했다. 긴장감이 전신을 휘감는다. 손이, 얼굴이 피와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소매로 얼굴을 문지르듯 닦는다. 쓰린 감각이 밀려들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동생의 이름을 외치듯이 불렀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팔의 할퀸 상처에 독액이 스며든다. 그리 대단한 독은 아니었으나 안 그래도 날카로운 정신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팔이 떨린다. 몸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전부 독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 체튼!"

대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발걸음 소리가 불안정하다. 이성이 깎여나간다. 영혼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 욱신거렸다. 이디스는 천천히 숨을 내쉬다가 다시 동생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불현듯 걸음을 멈춘다. 자리에 못 박힌 듯 서버린다. 파란 불빛을 닮은 눈이 빛을 잃는 듯했다. 비가 내린다. 이제는 차가운 것이 되어가는 동생의 몸이 바닥에 뉘어 있었다. 작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던 자가 고개를 들었다. 심지가 꺼진 이디스의 눈동자가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에서 일렁거린다.

"... 아, "

입에서 입김이 흩어지고 마는 연기처럼 흘러나온다. 눈조차 되지 못한 빗방울이 흩날린다. 뻣뻣하게 굳은 몸 안에서 혈류가 돈다. 잡을 길 없는 마음처럼. 손끝이 하릴없이 떨리다가... 그 애는, 제 동생이에요. 제가 데려갈게요. 제가... 수습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제발요.
이디스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하지만 왜 이런 순간에, 마치 깨진 유리병처럼... 이디스는 울렁거리는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다가 다른 이를 바라본다. 이디스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자신과 완전히 다른, 적대적인 기관의 대표자. 이런 상황에서 싸울 수도 없고, 싸운대도 이길 가능성이 없다. 그러니까, 시체만이라도 직접 수습하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되든, 그건 상관없었다. 수습만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무리 남부라고 해도 이 겨울은 너무 추웠으니까. 추위를 그렇게 많이 타는 애였는데.
아만다는 제 눈앞의 사람을 바라본다. 제 자식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았다. 이제 겨우 10대 후반이 된 것 같은 앳된 얼굴에는 영혼의 심지가 없었다. 다 타오른 잿더미 같은 빛깔의 머리카락이 무겁게 늘어진다. 내뱉어버린 한숨처럼. 아만다는 이디스보다 더 어렸던 이를 본다. 이제 10대 중반이나 돼 보이는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어린아이가 자유를 찾다가 죽어버리는 이 상황이 견딜 수가 없었다. 이디스가 적진의 사람이고,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사람의 동생이고, 그런 것 이전에 아만다는 한 아이의 엄마였다. 곧 바닥에서 점차 차가워지는 아이를 조심히 안아 들고, 담요로 감싼 뒤... 느릿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 차가운 몸을 품에 안겨준다. 이디스는 고개를 동생을 안아 든다. 죽은 자의 몸은 무겁다. 사랑하는 내 동생. 역시 이 겨울은 너에게 너무 혹독했구나. 이디스는 아만다를 보고 무언가 말을 한다. 고맙다는 말이었는지, 혹은 다른 무엇이었는지... 스스로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그저, 차가운 몸을 하염없이 끌어안고 길게, 아주 길게 걸었던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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