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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자캐 로그

멀리 가는 편지.

by @Zena__aneZ 2025. 3. 18.

안녕, 잘 지내고 있어?
이곳은 지금 눈이 오고 있어.
눈이 귀한 곳인데, 신기하지. 오랜만에 내리는 눈인 것 같아.
너와 같이 보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해 봐.
 
지금 이곳은 겨울의 찬 향기가 가득해.
눈이 많이 오는데, 그 사이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와.
맑게 웃어 보이던 네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내 친구도, 가족도 잘 지내고 있어. 우리는 눈물로 보내지 않아.
울지 못하는 몸을 가진다는 건 가끔, 아주 슬프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행이다 싶기도 해.
네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가
네 눈물을 지켜보고 같이 울어줄 수 없어서...
그게 유일한 슬픔이었어. 정말이야.
 
너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 행복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오로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던 이 감정이 나를 평온하게 했어.
하나만의 감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그곳에선 네가 울고 있지 않을지 걱정이 돼.
눈 밑이 검어진 채로 울고 있으면 토닥여주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네가 울고 있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은 네가 괴롭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 거야.
다행이다, 하고 혼자 읊어 본다면 정말 괜찮아진 것만 같아서.
 
네가 있는 곳이 어떨지 궁금해.
향기가 느껴질까? 바람이 불까?
네가 떠난 곳에는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아닐 거야.
계절이 없는 곳일 거야.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곳일거야.
저승이란 그런 곳이니까.
 
그렇다면,
흰 봉투에 눈 한 줌 넣고
우표도, 글씨도 없이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
 
네가 떠나간 곳에는 눈이 오지 않는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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