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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전체 글373

그저 그런 거. 보호되어 있는 글 입니다. 2024. 9. 18.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더라.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이 차가운 눈밭이 혹독하게 춥다는 것, 이 혹한의 추위에서도 빛나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결국 짓눌려 죽어 차갑게 변해가던 것은 지울 수 없는 과거이자 현재이며 사실이다. 사실의 세계에서는, 그러니 이 차가운 눈 속에서는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아주 연약한 희망으로 연명해 가던 것이 부질없었고 속절없었으며 비참했다. 그럼에도 희망은 굳세고 좋은 사람들은 강인해서. 바뀌지 않는 것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그들이 좋은 사람들이었다는 것, 그토록 부정하고 싶었던 애정 따위에 목이 멘다는 것, 기어이 사랑으로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삶이... 입에서는 기침이 터져 나온다. 속이 쓰리다. 상처가 길게 늘어진다. 그가 걸어온 길처럼 길게도 늘어졌다. 그 흔적이, 상.. 2024. 9. 16.
나부끼는 달의 영혼과... 순백의 달빛을 베틀에 직조하여 짜낸 것만 같은 새하얀 머리카락이 검은 장막 드리운 하늘 아래서 흔들거린다. 그림자 속에 녹아든 자는 유난히 달빛이 밝은 날 모습을 드러낸다. 달빛이 마구 흔들리고 나부끼 것과 같은 모습이다. 희고 쾌청한 빛깔의 눈은 고고하게 빛난다. 어떠한 부정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손에 들고 있는 한쌍의 검이 밤하늘 아래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마치 검무를 이어가듯이. 결코 길지 않은 머리칼이 흩날려 얼굴을 전부 가린다. 검무를 춘다는 것은 단순한 핑계였으니, 달빛이 구름에 가려질 때 비로소 온전히 사라진다. 그 누구도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는 그가 품은 이름처럼 한없이 자유롭게 흔들리고 나부끼는 달의 영혼이었으니까.자유롭고 강인한 자가 당도한 곳은 비밀스러운 공간이었고, 그 공간.. 2024. 9. 16.
여명에 저무는 꽃. 몸 위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꽃이 무성하게 피어난다. 시력은 진즉에 다 잃어버리고 말아 꽃의 고운 빛깔을 눈에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하지만 감각이라고 할만한 것이 남아있었다면 끔찍한 고통이 동반되었을 것이니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은 야트막한 다행이 되었다. 죽어가면서도 무언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 기쁨인지 절망인지 분간할 길이 없었다. 밤에 피어나 여명에 저무는 꽃의 이름을 가진 자는 몸을 평온하게 뉘었다. 고통도, 슬픔도, 후회나 미련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 언제나 필사적으로 기쁨을 찾았고, 웃으면서 지냈다. 비탄보다 행복감이 더 많은 세상이었으니 분명 괜찮은 삶이었다. 그럼에도 일찍 숨이 다하고 마는 것은 슬픔이나 비탄에 가까웠으니... .. 2024. 9. 15.
달이 밝은 날. 그는 은색 보석을 닮은 빛깔의 긴 머리칼을 조심히 넘긴다. 들이킨 숨에서 시원스러운 밤의 향기가 느껴진다. 얼굴에 피어난 몇 송이의 꽃이 하느작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머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짙은 꽃내음에 정신이 흩어질 것만 같은 감각이 밀려든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어딘가 아파 보였고, 그런 창백한 얼굴을 반투명한 흰 천으로 가린다.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얼굴이 달빛에 빛난다. 그의 이름인 월하미인처럼 밤에 곱게 빛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듯 이끌었다. 마치 달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신화에나 나오는 사람처럼. 다만 그는 혼자인 것이 익숙했고, 애처롭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은 보일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혹하게 만들 일조차 없었으니... 그것이 비극인가, 한 .. 2024. 9. 14.
깨진 유리병과 편지. 고운 갈색의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져 바람에 모두 흐드러진다. 선명한 푸름 깃든 어여쁜 눈이 저기 먼 곳을 바라본다. 마치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혹은,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하늘색 리본 머리핀을 뺀다. 리본 끈을 다 풀고는 바닥에 툭 놓는다. 혼자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그토록 많이 들었으나 모닐레는 이따금, 혼자 있고 싶다는 충동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하지 못한 사과를 해야 할 것만 같다고 느낀 까닭이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간절하게 보고 싶지는 않아." 어느 순간부터 뒤편에 서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건다. 그 사람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모닐레에게 다가온다. 복수를 하러 왔냐는 말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 2024. 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