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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 환희의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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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아이. 세상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비유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사실만을 나타내고 있었다. 세상에 펴지는 역병, 더 이상 신도, 천사도, 악마도 아니게 된 괴물들이 세상을 시시각각 집어삼키려 했다. 다만 더 이상 신을 따르지 않게 된 타천사들은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역병에 대항했고, 일부 사람들은 타천사와 같은 선에 섰다. 다른 이들은 그들을 수호하는 자들이라 칭했다. 이 세상의 수호자들은 필사적으로 세상을 지켰고, 그 필사적인 마음은 또 다른 빛이 되었다. 빛은 모든 사람들에게 깃들었다. 가끔, 아주 희박한 확률로 특별한 존재가 태어나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별의 아이였다.별의 아이들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잠을 자는 것도, 음식을 먹는 것도 필요 없었다. 이들은.. 2024. 9. 12.
절제의 선율. 그 절대적인 선율은 거대한 황금 날개를 가지고 있다. 햇빛이나 달빛 따위를 받을 때마다 반짝이는 연하고 부드러 꽃잎처럼, 혹은 청아한 소리 울려 퍼지는 쪽빛 하늘처럼 부드럽게 빛난다. 절제의 미덕을 가진 신은 나비의 날개를, 혹은 천사의 날개를 닮은 것을 움직인다. 폭풍처럼 일렁이던 것이었으나 다정하고도 찬란한 신이 품고 있는 의지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땅에 닿았다. 사람은 무르고 연약해 신을 그대로 마주하면 미치고 만다. 그러니 최대한 부드럽게, 절제하며 사람들을 바라본다. 깊고 깊은 애정을 충분히 무르게 해서 사람들에게 흩뿌리는 것이었다. 무엇이든 절제하는 것이다. 넘치는 마음은 고통을 불러온다. 절제가 미덕인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 무언가를 감내하는 것은 황금색 나비.. 2024. 9. 8.
상처로 얼룩진 생이여. 지독한 삶이다. 그 단어가 정확히 어떤 것을 표현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지금껏 들어온 수많은 말은 이 삶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했고, 끔찍하다는 것을 알게 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눈에서 뜨거운 통증이 느껴진다. 한쪽 눈을 파고든 마기, 저주가 한쪽 눈을 좀먹어간다. 이제는 피가 흐르지 않지만 무언가가 계속 흐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일까. 흐르고 있는데도 모르는 피일까.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손으로 닦아낸다. 그것의 색을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눕는다.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며칠이 지나간다. 혹은 몇 주였나? 시간이 번잡스럽게 어지럽혀진다. 눈을 .. 2024. 9. 7.
復活?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그것을 묻는다면 그것 또한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한 생명은 그대로 썩어 사라짐이 마땅하나, 이따금 그것을 하지 못하는 생명도 있다. 마물의 핵이 사람의 시체에 자리 잡는다면 새로운 마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 마물이되 마물이 아닌 것. 사람의 의지를 놓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만약, 아주 만약에 그 사람이 살아난다면... 부디 아주 조금의 가능성을 가진 모습으로 살아나길, 그렇게 바랐다. 그러니 이것은 또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생전에 그렇게 밝고 상냥했던 사람이 어째서 지금은 얼어붙은 육신으로 고대 마물의 힘을.. 2024. 9. 5.
거짓말. 그는 불안했다. 무엇에 대한 불안인가, 그리 물어본다면 대답할 길이 없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오랫동안 간직한 마음인 것 같기도 했고, 혹은 언젠가의 두려움 같기도 했다. 그의 시선이 어딘가에 머물렀다. 차갑고 서늘한 곳에서 피어오른 온기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일렁인다. 마음이라는 것이 일렁거리고 울렁거린다. 금색 시선의 끝자락에 녹음 가득한 시선이 맞물린다. 눈을 마주친 이는 밝게 웃었다. □□, 무슨 생각하고 있어? 친우의 목소리. 언젠가 떠나가버릴 것만 같은 자의 목소리였다. 마치 무언가를 길게, 아주 길게 준비한 것만 같은... "..." "오늘따라 반응이 이상하네.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혹시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어? 넌 언제나 걱정이 많았잖아... 2024. 9. 4.
가치있는 세상. 이 세상은 가치 있는 세상이다.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세상이었다.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이었으나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생명이 자라난다. 아스테르는 이 세상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여겼다. 눈이 멀듯한 흰 설원은 사실 죽은 자의 뼈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차디찬 세상은 잔인했고, 혹독했다. 검게 그을린 듯한 탁한 빛깔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황혼의 가장 어두운 분홍빛을 빼와 박아 넣은 듯한 눈은 늘 생기가 없었다. 북부의 종교는 잘못되었다. 이것이 틀리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한 사람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 아스테르는 언제나 그랬듯 침묵하기를 택했다.겨울은 눈물과 고요의 계절이다. 모든 소리가 눈에 파묻혀 사라진다. 의미 있는 것은 없었다. 생이란 부질없다.. 2024. 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