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 로그208 잊히지 않을 마음이란. 킬리움은 장갑을 고쳐 끼고 저보다 몇 배나 큰 마물을 가볍게 뛰어넘어 치명상을 남기고 가볍게 착지했다. 온갖 유적지와 던전이라 불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유물을 수집했기에 튼튼한 옷과 장비, 그리고 그에 맞는 실력은 필수였다. 그 안에 득실거리는 마수를 하나하나 죽여가며 특히나 비싸게 거래되는 마석을 가방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곤 돈이 될 만한 것을 찾는다. 주변을 둘러보다 책 몇 권을 주워든다. 킬리움의 스승은 책은 가끔 꽝인 것도 있지만 보석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될 때도 있으니 본다면 챙겨 오라고 했다. 사실 꽝이어도 킬리움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킬리움은 그저 글자가 좋았다. 마침 그의 스승은 유능한 복원가였고 그는 무언가를 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니 최고의 조합이었다. 마석과.. 2024. 6. 28. 사랑의 저주. 그는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신으로 떠받들어지고, 그들과 같은 곳에 서있었으나 결코 같은 존재가 아니다. 존재의 차별은 흘러넘치는 애정이고 경외심이었다. 순 제멋대로인 감정들의 나열에 늘 속이 울렁거렸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그들과 같다 여겼으나 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런 차별적인 것마저 사랑이라니, 너무나도 잔혹한 현실이 아닌가?그럼에도 그가 필사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한 것은, 그는 그마저도 밀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작고 여리다. 쉽게 상처받고 그것보다 더 쉽게 죽어버린다. 찰나를 살아간다. 그렇기에 불꽃과 같았다. 하염없이 사라질 것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 불꽃에.. 2024. 6. 26. 주술과 생명. 북부는 위험하다. 이 세상에서 적절한 지식을 얻은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위험이라 함은 위험한 마물과 험한 지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는 분명 사람도 개입해 있었다. 사회구조나 시스템 따위, 혹은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사고방식이나 주술과 같은 것들. 북부의 그러한 위험요소 때문에 죽을 뻔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위험요소 덕분에 살아남았다. 목적조차 불분명한 주술의 대상자이자 시전자가 된 리이스는 운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매 순간 육신에 에너지가 붙들리게 하는 주술을 왜 만든 것인지 알 수도 없었다. 사령술과 유사해 보이는 불완전한 주술이 대체 왜, 무슨 목적으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심장에 억눌려 넘실거리는 힘이 시시각각 위태롭게 번뜩.. 2024. 6. 23. 언젠가의 가능성. 바니타스 세계관 : 릴리가 다른 이들을 만나면 릴리 - Q더보기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오랜 시간을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봐왔다. 악행에 관한 것, 사람의 믿음에 관한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변질되는 이야기까지. 그것들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들은 끝없는 분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두가 평온한 곳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 중앙지역과 비슷한 곳. 낙원과 같은 곳을. 누군가는 원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원하는 곳을 만들어나갔다.처음에는 많은 문제가 나아지는 것 같았다.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나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분쟁 속에서 살아간다. 사실은 속부터 썩어가는 보기 좋은 과실일 뿐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왜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미 없어져버린 자신의 친우라면.. 2024. 6. 23. 붉은 백합은 희게 물들고. 릴리는 보호술사였다. 그 시대에서 보호술을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노력으로 만들어진 천재인지, 천재였기에 노력을 한 것인지.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릴리는 천재였고, 그 힘을 악용하지 않을 정도의 훌륭한 인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북부는 뭐가 문제인지..." 내 고향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니까. 릴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곤 혼잣말을 이어갔다. 북부는 이상했다. 최소한 천재라고 불린 릴리의 상식 안에서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릴리는 직접 목도하지 않은 진실에 대해서 그려낼 수 있었다. 북부에서는 인신공양이 이어진다. 또한 신을 향한 광적인 믿음이 있었다. 신이라고 불리는 이는 그것을 필시 원하지 않았으리라.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 .. 2024. 6. 22. 최악으로 변화하는 것. 모든 사람은 최악의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것이 어떤 존재이든 말이다. 모든 사람은 필시 악해지고,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다려는 그러한 악을 피해 가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살아냄에 따라 감정이 쌓이고, 쌓인 감정에 따라 슬픔과 절망이 쌓인다. 오로지 기쁨으로 살아내는 인간은 없는 것이 당연했다. 평온하게 살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다. 마물이 많은 만큼 위협이 많아진다. 지키기에는 어렵고, 행복하기에는 힘겨운 것이며, 잃기에는 너무나도 쉬운 세상에 비탄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그런 그에게도 가족처럼 아끼던 이들이 있었다. 혈연이 없던 아이들은 한데 모여 혈연보다도 끈끈해졌다. 그들은 함께 살 것을 약속하기도 했고, 누군가가 죽는다면 굳세게 살아가리라 약속했다. 셋은 서로 손을 모아 잡는다. 다려.. 2024. 6. 21. 영원히 녹슬지 않는 것. 마음은 마모된다. 영원히 유지되는 것은 없다. 녹슬고 사라져 부스러진다. 피넥사라는 그런 것에 대하여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것과, 그들을 바라보던 눈길과, 직접 꽃을 틔웠던 대지와, 그리고 함께 서서 웃던 얼굴들. 시간에 지나 천천히 마모되며 씻겨 내려간다. 마치 모든 부정을 녹아내리게 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물과 같다. 가둬둘 수도 없고, 영원할 수도 없다. 모든 것이 흘러가 사라진다. 참, 권태로운 세상이다. 피넥사라는 만년설을 꼭 닮은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저희를, 바라봐 주세요."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없다고 여겼건만 이 빌어먹은 사랑은 또 영원한 것이 지독한 아이러니였다. 피넥사라는 권태로운 눈빛을 하고 그를 바라본다. 나는 너희의 곁에 있었어. 언제나. 그.. 2024. 6. 20. 행복한 꿈을 꾸는 중이야. 류연은 늘 꿈을 꾸었다. 이름 붙이지 못한 꿈에서는 다정한 사람이 나온다. 류연은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그를 그리워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를 그리워한다니... 류연은 늘 정원과도 같은 공간 속에 홀로 서있다가 중얼거린다. 가지 마, 가지 마세요. 누군가에게 전하는지도 모를 틀림없는 진심이었다. 깊고 깊은 꿈 속에서 달그림자 같은 얼굴을 한 번 비추고 사라지는 사람을 왜 그렇게 붙잡고 싶어 하는가. 류연은 그런 생각과 함께 잠에서 깼다. 찝찝한 꿈이다. 하지만 분명 행복하기도 한 꿈이다. 악몽을 꾸면 분명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 꿈을 꿀 때만큼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그럼에도 찝찝한 이유는 늘 어딘가 둔해지기 때문이다. 어린 날부터 이어온 꿈은.. 2024. 6. 16. 햇살 부서지는 설원. 설원 위에는 마수가 득실거린다. 아무리 마수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해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이었다. 약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세상이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과 매섭게 불어오는 바람은 피부를 저밀 듯 차갑다. 약한 사람의 손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던 이는 두 아이를 안아 들었다. 함께 가자. 춥지 않은 곳으로... 에들리는 제 쌍둥이 동생인 에밀리의 손을 잡고 오래전에 있던 일들을 떠올리며 설원 위를 걷는다. 에밀리도 같은 추억을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설원의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쏟아지는 눈은 희게 빛난다. 그 빛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그 사이에서 유독 하얗게 빛나는 줄기와도 같은 것이 스산하게 움직였다. 에들.. 2024. 6. 14. 영원히 옳은 것.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정답인 것도, 모든 것이 오답인 것도 없다. 사실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한 것도 없다. 꾸준히 질문을 던진다. 사실, 이곳에 옳은 이가 있는가. 그렇다면 나의 목소리를 한 신이 대답한다. 옳은 이는 없다. 사실 모든 이가 옳지 않다. 그리하여 영원불멸이란 없다. 옳은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사실은 전부 틀린 것이니, 필멸자의 생각이란 틀릴 수밖에 없으니, 끊임없이 의심하고 경계하고 포용하며 살라. "..." 오묘한 황혼색의 눈을 가진 이는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읽는다. 꽤나 오래된 고서는 강렬한 파동을 간직한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낡은 종이 속에서 튀어나와 파란을 일으킬 것만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고서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배움에 .. 2024. 6. 10.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21 다음